때론 한번씩 꿈꿔보는 환상이 있다.
책을 사러 동네 길모퉁이에 들어선 서점에 들어가서 철학서적이 꽂혀져있는 서가 근처에 어슬렁거리면서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서문을 한번 읽어보다가 헤겔의 독일변증법을 한번 뒤적거려보다가
훗설이나 비트겐슈타인같은 철학자들의 저서를 만져보다가 마치 이런 책만 있냐는 듯이
- 줄리아 크레스테에바나 멜라린 클라인의 저서는 없나요?
라고 묻자 둥근 안경테가 코에 걸쳐진 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주인이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내미는 광경.
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깜빡 잠이 들어 어딘지 모르는 정류장에 내려 헤매고 있을 때 발견한 허름한 커피집이 눈에 띄여
왠지 모르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런 실내장식과 군데군데 꽂혀있는 괜찮은 책들 사이에서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는 그 맛에 감탄하는 나의 모습.
너무나도 전형적인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숨은 현자(또는 숨은 명인;)에 대한 환상은 나에게 있어서 꽤나 오래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작은 비밀이다.
ROTC로 복무하고 제대한 학교 후배가 유학 가기 전에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를 방문하고 와서
저녁 먹자고 연락와서 만나니 "형, 이 책 읽어보셨어요?"라며 내민 책이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점에 해당하는 최상류층들만이 사는 고급 아파트 수위의 이야기.
부유함과 고급스러움에 둘러싸인 작은 수위실에서 하루 시간을 보내는 수위인 르네에 관한 자그마한 소품집.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듯이 이미 삶의 기력이 다해 하루하루를 이냥저냥 권태로움에 찌들은 채
주위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거주민들과는 애초에 경계선이 그어진 사람이라고 낙인 찍힌 사람이 사는
고급아파트에 비해 너무나도 허름하고 단조로운 수위실이
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짜르트의 레퀴엠이 흘러나오고
훗설의 현상학에 관한 책을 읽어본다거나
베르메르의 그림에 경탄과 찬탄을 금치 못하는 주인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 숨은 현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그의 눈에 어떻께 비칠까.
삶의 연속성이 가져다주는 생의 찬란함과
생의 한계가 일깨워주는 시간의 소중함을
지금 나는 충분히 만끽하고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새삼 궁금해진다.